나는 요즘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갈등으로 만들어진다. 갈등 - 오해 - 이해의 구조. 이것이 드라마의 기본이다. 그리고 현실의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갈등이란 대부분 폭발될 지점을 찾지 못하고 쌓이길 반복하다 끝이 나고 만다. 이곳에는 드라마처럼 갈등을 풀 장치가 관대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다. TV를 들여다보는 시청자는 전지적인 시점을 부여받고 이쪽 사정과 저쪽 사정을 균형 있게 알아가며 문제의 실마리를 잡아채지만, 이 행성 속에서 리얼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자기 속마음만 알아갈 뿐이다. 저쪽 사정 같은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에라이, 드라마 따위!"라고 중얼거리며 당분간은 남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에 히히덕거리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사실 이 글의 시작은 '나는 이제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였다. 그러다 암묵적 완고함을 가진 '이제'라는 말을 지웠다. 내가 언제 또 리모컨을 손에 쥐고 희희낙락 웃고있을 지 모르니까. 나는 '이제부터' 혹은 '절대' 혹은 '결단코'와 같은 말이 갖는 단호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안다. 지나친 다짐은 언제나 현실을 뒤틀어놓고 만다는 말은 옳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요즘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요즘의 시점을 벗어났을 때 내가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하지 않을 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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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