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잠들기 전 노년 여성의 노동에 대해서 쓴 이순자 작가의 글을 읽었다. 제목은 '실버 취준생 분투기'. 황혼이혼 후 육십을 넘기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여성이 4년간 경험한 직업 분투기다. 그가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학력과 경력을 모두 없애고 이력서를 단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 노인이 일하는 데 그동안 사회에 참여해온 흔적과 공부를 통해서 얻은 자격들은 번거롭고 부담스럽기만 한 무엇일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백화점 청소, 세탁공장 수건 접기, 계단 청소, 병원 청소, 어린이집 주방 업무, 아기 돌보미,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 보조일을 해나간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값이 치러지지 않은 여성의 돌봄노동은 사회에서도 헐값에 거래됐다.
그는 일련의 일을 하면서 느끼고 관찰한 것들을 차분하게 써내려 갔다. 글은 노년의 가난과 노인 일자리의 실상, 한국사회가 여성 노인을 얼마나 조용히 착취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지는 일을 통해서 얻은 자부심으로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쓴다. 나약한 인간군상을 관찰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시선, 자신을 오롯이 책임지고 나아가는 걸음에서는 품위가 느껴졌다.
그는 글의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기초수급자가 되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기초생활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작가의 작품을 더 읽을 수 있을까 해서 알아 보다가 그가 올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그의 영면을 바라면서 일신을 끝까지 책임지려고 노력했던 한 사람의 힘이 메아리처럼 남는 것을 느낀다.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실버 취준생 분투기` - 이순자 - 매일신문 (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