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에 겨운 날들이었다. 생리적 졸음인지 정신적 졸음인지 헷갈리긴 했지만 어쨌든 최근 들어 나는 늘 졸렸다. 졸렸고, 잠을 좀 자고 싶었고, 할 수 있다면 오래 자고 싶었다. 잠을 좀 자두고 싶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심리적으로 여러 혼란들이 찾아왔다. 큰 돌멩이가 하나 던져졌고, 이어 또 하나가 날아들었으며, 마지막으로 작은 돌멩이 하나가 물 수제비 뜨듯 튕겨들었다. 파장은 끊이지 않았고, 날아든 돌멩이가 가라앉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나 결국은 가라앉는다. 알지만 늘 안으로 밖으로 원을 그리는 그 순간에는 어질, 하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 간만에 한가로이 낮잠을 잤다. 이런 나른한 느낌이 얼마 만이던가. 책을 읽다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창으로 들어오던 빛은 사라지고 저녁 어스름의 바람이 조금 열린 창으로 가지런히 들어오고 있었다. 잠결에 언뜻 들리던 아이들 소리가 선명히 그 속에 섞여 들었다. 잠깐 중학생 시절 내 방이 떠올랐다. 그때와 바람이 닮은 날이다. 몸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좋은 날이다. 이런 봄날은.

 

잠에 대한 천착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잠에 아낌 없는 관대가 있는 편이다. 아낌 없는 관대란 다른 게 아니라 자고 싶으면 그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는 사람 중 잠 자는 시간을 무척 아까워하는 사람이 있다. 왜 잠을 자야하는 지 모르겠다던 그 사람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모르는 것을 알아나가기에도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며 "잠 자는 시간이 아까워 죽을 지경"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잠 못 자는 시간이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깨어있는 동안에도 충분히 취할 것은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는 잠을 자야 비로소 하나의 마침표를 찍으며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잠은 휴식이기도 했지만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문법 같은 것이기도 했다.

 

잠이 고픈 상태에서는 머릿속의 잔상들이 곧잘 꿈으로 드러나곤 한다. 책을 읽다 잠이 들면 그 내용과 같게는 아니더라도 일어나 아, 책을 읽어 그랬구나 싶을 만큼의 꿈을 꾸고, 가족 생각을 하다 잠이 들면 그 생각의 고리와 물려 가족들이 불쑥 꿈 속에 찾아든다. 지나치게 뭔가에 시달린다 싶으면 꿈에서도 무서운 뭔가에 쫓긴다. 잠을 좀 자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꾸는 꿈들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오늘 낮잠에선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그저 자다가 일어나니 배가 고파 딸기를 좀 씻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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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