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에피소드

2012. 7. 19. 23:52 from 외면일기

 

 

 

 

퇴근길 지하철. 지하철 문이 닫히고 스크린 도어가 닫히려는 찰나, 그 사이로 한 남자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닫힌 지하철 문을 두드린다. 똑똑똑. 마치 남의 집 현관문 두드리듯. 안에 있는 우리는 그저 문 두드리는 남자를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는데 지하철이란 구조 속의 사람들이란 다 그런 것이다. 나로서는 상황을 나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곧 초인종에 화답하듯 스크린 도어가 열리며 "스크린 도어 바깥으로 물러나세요, 물러나세요!"라는 방송이 나왔다. 남자는 자신이 두드리던 것이 대문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약간 화가 난 듯 욕 비슷한 소리를 내며 도어 밖으로 나갔다.

 

여하튼 그렇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다시 한번 보게 된다. 문을 두드리거나 손을 내미는 행동이란 그런 것이다. 문을 열거나 열지 않거나(손을 잡거나 잡지 않거나) 그런 식의 결과는 어찌 되었든 문을 두드렸기 때문에(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나의 지론 중 한 가지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정식으로 도움을 청하라'는 것인데 그런 마인드는 확실히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손을 좀 잡아달라'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데 인색하지 않다. 그러니까 문을 두드리는 행동도 모쪼록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물러나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 가서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가고 싶다면 그런 태도가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보기 드문 재미난 광경은 그렇게 열린 결말로 막을 내렸다.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으니 그 노크남은 잔뜩 인상이 굳어 다음 열차를 탔거나 '내참, 더러워서' 하며 지상으로 올라가 택시를 잡아탔을지도 모른다.

 

'외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0) 2012.08.01
청소는 끝났다  (0) 2012.07.23
그런 빵이라니  (0) 2012.07.04
단골 카페가 사라지는 기분  (0) 2012.06.02
양금이가 죽었다  (0) 2012.05.28
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