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검열을 거칠대로 거쳐 이미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버린 덩어리가 텍스트가 되어 뒹군다. 진정성 없는 이의 입에서는 성실히도 진정성이란 낱말이 뱉어지고,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이는 매일 사람이 길이라는 말을 지껄이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나는 아마 자기검열을 거칠대로 거쳐 이미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버린 덩어리를 첫 문장으로 쓰고 만족하는 찌질이쯤 될 것이다.
겨울 날씨 한번 매섭다. 엄마가 예쁜 대봉 홍시 한 박스를 보내와 언니가 쟁반이며 접시에 한 마리씩 내 놓았다. 서로 붙지 않게 얼기설기 세워놓았는데 이미 터진 애도 있다. 익어서 터졌나 싶어 접시에 담아다 십자가르기를 시도해 먹었더니 마지막 맛이 아직 떫다. 혹시나 해서 다른 놈도 잡아다 숟가락 푹 쑤셔 안 것을 파먹어 봤더니 그 놈도 끝맛은 떫다. 세상 다 익은 것처럼 굴더니 입만 버렸다.
나도 그 홍시 같은 인생 사는 것 같다. 다 익은 듯 말랑거리지만 사실 시퍼렇게 떫은 맛을 속에 채우고 있는 거다. 다행인 점 하나 있다면 어디 한 군데 터져 썩고 있는 것만 아니라면 언젠가는 제대로 익을 거라는 믿음 정도. 밥 한끼 하자는 사람에게 바빠서 시간 내어줄 수 없다 뻣뻣하게 굴고서는 침대에 누워 남루한 낱말잇기나 하고 있는 나는 아직 떫은 대봉이 한 마리쯤 되는 것 같다.
'외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 맞다, 스물 아홉 (0) | 2013.01.02 |
---|---|
그때 그 사람 (0) | 2012.12.29 |
설탕눈이 쌓이면 (0) | 2012.12.13 |
취향 도둑들 (0) | 2012.12.03 |
동무 왜 이리 말이 많소 (0) | 2012.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