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언젠가 언니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힘들다며 징징거렸던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엄마의 체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 언니가 "엄마는 뭘 먹고 그렇게 힘이 넘쳐?"라고 물었더니 엄마 왈, "마음을 먹지." 

 

# 2.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고 아빠께 전화해서 "아빠, 나 이제부터 백수하려고."라고 말하니 아빠가 말씀하시길, "변화란 좋은 것, 그리고 즐겨야 하는 것, 너는 백수가 아니라 자유인,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 그로부터 나는 당당하게 스스로를 자유인으로 명명하고 이름에 걸맞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 3. 미국 여행을 다녀와서 시차로 몹시 졸린다고 하자, 아빠가 "거긴 거기고 여긴 여기"라며 "그 세상의 시간을 여기까지 가져오지 말아라."고 말씀하셔서 정신이 개운해 졌다.

 

# 4. "아빠 요즘 너무 덥지?"라고 물으면 "여름이니까."라고. "아빠 거기 많이 춥다며?"라고 물으면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 같다."고 말씀하신다. "뉴스 거리가 그렇게 없는지 매번 날씨 소식이 메인."이라고. 그러고 보니 매년 뉴스에서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는 것을 호들갑스럽게도 알려준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 5. 얼마 전 비닐 봉투의 매듭을 풀다 잘 되지 않아 그냥 잘라내 버리려고 가위를 찾았다. 그러자 엄마가 "매듭 풀기 힘들다고 무조건 잘라낼 버릇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왜? 하고 물으니, "그래야 살면서 힘들고 꼬이는 일이 생겨도 차근차근 풀 힘이 생긴다"며 "잘라내지 말고 살살 한번 풀어보라."고 하셨다. 문득 그동안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내가 잘라내 버린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시렸다.

 

# 6. 처음에는 일기장으로 사용했던 몰스킨 노트에 요즘은 시도 쓰고 좋은 텍스트도 옮겨 놓고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읽는데, 어느 날 아빠가 "뭐 읽고 있어?" 하고 물으시길래, "내가 쓴 글."이라고 하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독서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외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신감이 흘러내린 표정  (0) 2013.10.20
춤추고 노래하는 내 얼굴  (0) 2013.09.07
실은 그냥 여기 이 햇빛  (0) 2013.06.25
봄이 혀 끝에 닿았다  (0) 2013.03.27
이제는 없는 코끼리  (0) 2013.02.28
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