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집에서 5분 거리에 동네에서 가장 큰 슈퍼가 있었다. 이름이 근대화 슈퍼였나. 쌍쌍바가 100원 하던 시절이었다. 심심하면 그 슈퍼에 들러 초코우산이나 보석반지, 아이셔 같은 것들을 사먹었다. 나는 주로 어린아이가 가져다니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의 식품들을 선호했다. 주말이면 아빠가 근대화 슈퍼로 언니와 나를 데리고 가서 먹고 싶은 과자를 전부 고르게 했는데, 그럴 때면 초코우산을 색깔별로 담아서 계산대로 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초코우산 진열대 앞에서 노란우산을 선택할지 파란우산을 선택할지 고민했던 지난날은 훌훌 털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언니는 그때도 정말 다양한 과자를 골라왔던 것 같다.
슈퍼가 있던 길목의 약국도 기억난다. 한번은 약을 지으러 가서 "누구 약 지으러 왔니?"라고 묻는 약사 아저씨께 "제가 아파서 왔는데요."라고 말하자 아저씨가 파핫 하다 껄껄 웃으시던 기억이 있다. 고사리만한 게 자기 입으로 내가 아프니 약을 내놓으라고 하는 게 앙큼하고 우스웠나보다.
어릴 땐 엄마와 시장에도 곧잘 갔다. 엄마가 시장에 가야겠다고 하면 나는 후다닥 옷을 갈아 입고 엄마 옆에 착 달라붙어서는 나도 가겠다는 실천적 의지를 보여주곤 했다. 조금 크고 나서는 기분상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끔 "엄마 혼자 가." 그랬는데, 그러면 엄마가 "같이 가자."며 나를 살살 꼬득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원했기 때문에 시장에 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도 나를 데리고 다니는 걸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요즘도 엄마는 서울에 오면 가끔 "저기 남대문 시장에나 한번 가봐야겠다." 하면서 나를 슬쩍 쳐다본다.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돌아다니는 걸 싫어했으니 역시 내가 만만한 것이다. 시장에 가서 나쁠 건 없다. 시장에서 미더덕과 쪽파를 사온 날이면 어김없이 된장찌개에 들어간 미더덕을 건져 올려 살살 씹어먹거나 살짝 데쳐 매듭 모양으로 돌돌 말아져 식탁에 오른 쪽파를 초고추장에 콕콕 찍어먹곤 했는데, 일단 재료의 구매과정에서부터 지켜봐서 그런지 맛도 더 나는 것 같고, 그때의 기억이 지금은 꽤 짭짤한 추억으로 남았으니 말이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금강공원에 놀러 갔다. 놀이기구를 전혀 타지 못하는 아빠가 날으는 양탄자나 다람쥐 통을 타고 거의 반 패닉 상태에서도 언니와 나를 두 팔 아래 두려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전바를 꼭 쥐고 있는 아빠의 손을 시작으로 온 몸이 놀이기구에 달라붙은 것만 같았다. 역시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주말 놀이공원 나들이의 하이라이트는 돈까스였는데, 돈까스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주문 전 엄마에게 돈까스와 비후까스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곤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 하다 비후까스를 시키곤 했다. 식사가 나오면 접시에 담긴 마카로니를 가리키며 이건 이름이 뭐였지? 물었다. 매주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도 엄마는 매번 그것의 이름이 마카로니라고 설명해줬다.
언니 말대로 가끔은 그런 일이 정말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근대화 슈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까? 약국 아저씨는 얼마나 늙으셨을까? 장전시장에서 미더덕을 팔던 아주머니는? 금강공원 옆 동물원의 코끼리가 죽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저학년 때 동물원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는데, 코끼리 우리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다른 반 친구의 스케치북을 코로 스윽 빼앗으며 친구를 자지러지게 울렸던 코끼리다. 그러니까 이제는 없는 코끼리다. 그런데, 그런 일이 정말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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