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에는 대포촌이 있다. 그곳을 명명하는 근사한 이름이 있지만 나는 그곳을 대포촌이라 부르기로 한다. 대포촌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이름에 걸맞게 사방에 대포가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삭막한 곳은 아니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보면 미풍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분수대를 가득 채운 물 위에서 제비가 놀고 있다. 제비는 분수대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난을 친다. 오색의 꽃무리가 대포 곁을 지키고 그들에게 물을 주기 위해 호스를 들고 다니는 관리인이 있다. 따뜻한 햇살 속에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꽃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흔히 대포를 위협적인 물건으로 알고 있지만, 그곳의 대포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당당히 사람들이 투숙하는 호텔을 향해 주둥이를 내밀고 있다. 오래된 대포가 무엇을 겨냥하든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늙은 대포 옆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늙은 대포를 기념하는 것인지, 대포 옆에 있는 자신을 기념하는 것인지, 그저 여행을 기념하는 것인지. 그들이 알까 모르겠지만 대포에게도 젊은 시절은 있었다. 그때는 아무도 그를 기념하지 않았다. 팡! 팡! 그 자체로 존재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대포촌에서 내려와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에그타르트를 사들고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했다. 내가 간식을 먹는 사이 샌드플라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흡혈 벌레들이 내 살점을 물어뜯었다. 역시 지구는 둥글고 자원은 순환한다. 내가 그곳의 시간을 좋게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들도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똥!"이라고 말을 해도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울고싶다!" 소리쳐도 아무도 내가 울고싶은지 모른다. 이방인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이해받지 않아도 된다. 의미를 묻고 따질 필요도 없다. 때때로 그런 담백한 상태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청나라 거리의 뒷골목에 갔을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쉬지 않고 빨간 건물들로만 이어진 거리는 묘한 냄새를 풍겼고, 우연히 접어든 뒷골목의 집들은 하나같이 컴컴했다. 그 속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어라, 이방인이네?" 하고 잡아가도 아무도 모를 곳이었다. 내가 "살려주세요!" 외쳐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이방인 같은 건 그만두고 싶어졌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나의 이방인 시절도 금세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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