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저 편이라니

2014. 9. 13. 23:58 from 외면일기

 

가족들과 홍콩 여행을 왔다. 본격적인 여행 첫 날. 센트에 딤섬을 먹으러 갔다. 비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개점 시간에 맞춰 도착한 식당에 자리를 잡보니 식당 안쪽의 병풍 벽 너머가 눈에 들어왔다. 병풍 벽은 나무 살 무늬 뼈대를 기본으로 유리가 끼워져 건너편이 보이게끔 돼 있었다. 이미 세팅도 끝나고 음식도 주문한 상황이라 자리를 옮겨 달라고 말하기가 민망해 우리는 병풍 벽 너머 공간을 흘끔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저기 저 편이 조명도 은은하고, 테이블도 더 크고, 사람도 별로 없는데 처음부터 저쪽으로 갈 걸 그랬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식사를 마쳐갈 무렵, 엄마가 갑자기 "저거 거울이네?"라고 말을 했다. 우리가 딤섬을 씹다 말고 설마 하는 표정으로 뒷쪽 병풍 벽을 쳐다보는데 엄마가 다시 한 번 "저거 거울이야."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정말 거울이었다.

 

유린 줄 알았던 것은 거울이었고, 저쪽인 줄 알고 부러워했던 곳은 우리가 있는 이쪽이었다. 그저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과 함께 있는 사람들과 앉아 있는 자리를 그대로 비추고 있었을 뿐, 조명이 더 은은하지도, 테이블이 더 크지도, 사람이 덜 있지도 않았다. 애초에 저 편은 없었으니까.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부러워하다니. 우리는 그저 여기 이 편에서 딤섬을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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