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노력에 이름만 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사실 이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 흔해서 이렇게 '그들을 마주했다'고 쓰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은 그들을 마주하고 든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유명인 또는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간혹(어쩌면 자주)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커리어에 추가한다. 그들은 교묘하게 자신을 어떤 결과물 위에 얹는다. 심지어 그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익스큐즈미? 그거 당신이 하지 않은 거 내가 아는데요? 하는 눈으로 쳐다봐도 미소만 짓고 있다. 소수의 사람이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세상은 모르게'를 모토로 뻔뻔하게 움직인다. 그 행동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탁란에 가깝다. 스스로 알을 품지 못하고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새끼치기를 하는 행동 말이다. 그러니까 대놓고 기생을 하는 것이다.
일단 탁란에는 기생새와 숙주새가 등장한다. 유명한 기생새에는 뻐꾸기가 있으며 그러한 탁란조는 전세계적으로 100여종이 있다. 그들은 숙주새에 자신의 알을 의탁한다. 말이 의탁이지 자신의 알과 비슷한 알을 가진 둥지를 선택해 숙주새가 없을 때 둥지에서 알을 하나 밀어내고 자신의 알을 낳는 것이다. 둥지에서 알을 밀어내는 이유는 갯수를 맞춰 숙주새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이 둥지 저 둥지를 번갈아 날아다니며 알을 의탁하는 염치 없는 새(뻐꾸기)도 있다. 결국 기생새의 이러한 몰염치로 숙주새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엉뚱한 곳에 쏟게 된다. 나는 주변에서 그런 기생새의 성품을 가진 사람을 몇 명 알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숙주새들의 방어가 진화해 탁란된 알을 알아차리고 둥지 밖으로 버리거나 아예 둥지를 탁란하기 어려운 곳에 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제비가 있는데 자신의 알을 예민하게 구분하거나 아예 인가에 둥지를 틀어 기생새의 접근을 예방한다. 탁란이라니 어림없는 소리! 하는 태도로 말이다.
사실 탁란이라는 말도 지나치게 상냥하다. 기생새는 자기의 알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낳고 도망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생새의 새끼들은 둥지의 다른 새끼들보다 알에서 더 빨리 부화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다른 알(혹은 막 태어난 새끼)들을 등으로 밀어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이기의 악순환이다. 탁란의 결과가 그러하듯 탁란의 태도는 결국 자기 안에 있는 뭔가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려 깨뜨린다. 이를테면 자존심과 자긍심 그리고 정직성 같은 것들. 그것들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에도 그들은 계속 모르는 척만 하는데 나중에는 자기 안에서 무엇이 사라졌는지조차 모르는 지경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뻔뻔하던 사람이 더 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이 모르는 게 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내가 알고 네가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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