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8년 만의 이동이었다. 언젠가부터 이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 이외에는 움직여야 하는 다른 이유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계기가 왔고 드디어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발품을 팔며 며칠간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녔다. 집을 보고 방을 보고 주변 환경을 보고 다시 집을 보고 방을 보고 주변 환경을 보는 시간이 몇 날 반복되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쯤 '여기네, 이곳으로 할래'라는 생각이 드는 집을 만났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떠날 곳이 정해지자 짐을 정리해야 했다. 먼저 버릴 것과 기부할 것과 본가로 보낼 것을 추렸다. 나는 남는 걸 가져가면 된다. 8년간 형제들이 오고 가며 함께 지내던 공간에는 서로의 물건과 시간이 쌓여 있었다.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기부를 하고 일부는 본가로 보냈다. 책도 정리했다.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기부를 하고 일부는 본가로 보냈다. 읽지 않은 책은 몇 권 챙겨왔다.
내가 이사를 하거나 말거나 마감들은 샌드위치 속의 햄과 치즈처럼 날짜와 날짜 사이에 성실히도 끼어 왔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정신을 부여잡고 해야 할 일들을 쳐나갔다. 정신은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했는데 정말 정신을 차려야할 때에만 머릿속에 정신이란 것이 잠깐 들어왔다가 긴장이 풀리면 다시 밖을 나가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마감이든 이사든 한 가지는 그 시간에서 빠져줬으면 싶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끝날 일은 끝나게 되어 있고 날짜에 맞춰 이사도 마감도 맺음을 하고 지나갔다.
다음 번에는 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이사를 하려고 한다. 움직이는 계기가 마음이 되어도 좋겠다 싶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삶을 크게 한번 들썩이기에 이사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는 이사한 집이 마음에 든다. 기분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고 정말 조금씩 그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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