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사에 관한 이야기다.


이사를 앞두고 물건 정리를 하면서 내가 그토록 많은 물건과 추억을 이고 지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나는 스스로를 심플한 인간이라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사를 하는 날에는 이삿짐이 새 집으로 끝도 없이 계속 들어오는 모습에 또 놀랐다. 이게 마지막인가요 묻는 내 질문에 어림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으며 아니오 한참 남았어요 대답하던 아저씨의 망연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아저씨, 저도 망연했습니다. 그리고 이삿짐을 풀면서 물건이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에 나는 세 번 놀랐다. 짐을 쌀 때 그랬던 것처럼 짐을 풀면서 '앞으로는 물건을 함부로 구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몇 번을 굳게 다짐했다.

 

가져온 물건에도 여전히 버려야 할 것이 남아 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몇 년간 쓰지 않던 물건에 갑자기 애정 비슷한 것이 생기면서 앞으로는 이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였다. 그릇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사용하는 모습을 시뮬레이션 해보는 내가 몹시 이상했다. 나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진지하게 물건을 쳐다본다고 달라지지 않을 사실이었다. 신발은 한번 신어 보면 마음이 금방 비워졌다. '이 신발이 굽은 높지만 이렇게 신으면 너무 예쁘지' 하다가도 발이 아파 분연히 벗어 기부 박스에 넣을 수 있었다. 어딘가로 보내기 전 괜히 한번 다급해지는 마음을 무심히 털어내며 자기객관화를 하는 것이야말로 물건을 정리할 때 필요한 태도다.

 

물건을 버리는 마음 이면에는 새로운 물건에 대한 설렘도 있었다. 내게는 그동안 캐리어 안에 고이 모셔둔 예쁜 컵과 접시들이 있었는데 이사를 하면 포장을 풀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매일 써야지 하는 마음에 기분이 자주 들뜨곤 했다. 헬싱키 여행길에 사온 접시와 컵이 그 안에 있었고 선물 받은 몇몇 접시들도 그곳에 있었다. 아직 짐 정리가 모두 되지 않아 캐리어를 풀지 못하다 오늘 잠시 가방을 열고 어떤 컵과 접시가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다 보니 한 시간이 흘러갔다. 컵과 접시를 신중히 고르던 시간이 생각났다. 헬싱키를 여행할 때가 늦가을이었는데 코 끝을 쨍하게 스치던 찬 바람과 옷깃에 스미던 얇은 빗줄기 같은 것들이 생각났다. 다음 여행지에서도 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몇 가지 사와야지 생각했다. '이런 것이야말로 근사한 일이지'라고도 생각했다. 

 

물건을 정리하며 물욕에 대한 반성과 무소유에 대한 다짐을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다른 여행길에 사올 나만의 기념품을 상상하며 행복감에 젖어 있는 인간이란 얼마나 뛰어난 망각 능력을 지닌 것일까. 그러나 신중하게만 구입한다면 역시 자기만의 기념품이란 근사한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아, 인간의 자기합리화 능력은 망각의 능력만큼 뛰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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