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언니와의 대화에 등장하는 한 국내작가가 있다. 그가 우리의 대화에 등장하는 이유는 그의 흉내내기 때문이다. 그는 본인이 좋아한다고 밝힌 해외작가의 작업론이나 말을 자신의 생각처럼 전하곤 하는데 가끔은 문장까지 똑같이 따라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인용이 아니라 말 그대로 베껴 쓰는 수준이다. 그가 우리의 화두에 오르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언니와 내가 오래 전부터 좋아해온 그 해외작가의 말과 글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사람이 나타나다니 눈이 똥그래진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처럼 쓰고 싶다거나 생각하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사람의 생각을 베껴와 자기 말처럼 포장하는 표현 방식은 교묘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평소에 말이 많다. 본인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자주 길게 나열하며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데 그 집착하는 태도와 본인의 글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이 있다. 시니컬한 태도를 가장해 어떤 일이든 논리 없이 판단하고 뒤틀어 정의 내리는 것도 그의 장기인데 마지막에는 꼭 도장을 쾅쾅 찍어대는 행위를 잊지 않는다. 귓가로 그 신경질적인 소음이 들리는 것만 같다. 가끔 우연찮게 그의 글이나 책이 눈에 걸려 몇 문장이라도 읽게 되면 역시 고집이 응집된 말들에 이내 눈도 머리도 피곤해지고 만다. 그 순간에 언니라도 곁에 있으면 "매번 이런 글을 종이책으로 출판해 내다니 그는 나무들에게 사과해야 해"라는 감상이라도 나누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외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팽이 사건의 전말  (0) 2019.10.01
카푸치노가 있는 오후  (0) 2019.09.18
필름 없는 카메라  (0) 2019.09.05
빵과 원두를 끌어안고, 안녕!  (0) 2019.08.24
인생은 타이밍  (0) 2019.08.01
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