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사무실에서 원고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사진 촬영을 하러 다녀왔다. 사진을 찍으러 간 김에 근처에 있는 유명한 에스프레소 가게에 들렀다. 앉는 자리 없이 긴 바에 기대어 서서 커피만 간단히 마시고 가는 곳이다. 손님은 없었고 주인은 중요하고 긴박한 통화를 하는 듯 했다.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자 통화를 마친 주인이 내린 커피가 나왔다. 나는 우유 거품 위에 황설탕을 스스슥 뿌려 한 모금 두 모금 마시기 시작했다. 잠시 들러 분위기만 보고 커피는 조금만 마시고 갈 생각이었는데 금세 잔의 바닥이 보였다. 이미 왔다 간 사람들이 바 위에 모아놓은 빈 잔의 행렬에 내 것도 합쳐놓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와 통화를 했다. 서울에 함께 갈 에스프레소 집이 있다고 말하니 '좋지' 하는 산뜻한 대답이 저 너머로 들렸다.

 

밤에 가만히 누워 있으니 유난히 예뻤던 오늘 하늘과 거품 위에 뿌려져 샤샤샥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던 황설탕의 사각거림이 떠오른다.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꼭 설탕의 장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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