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산책

2020. 3. 25. 22:45 from 외면일기

 

 

 

 

순식간에 날이 따뜻해졌다. 서울에 올라갈 땐 코트를 벗어두고 셔츠 하나만 걸치고 가도 좋을 것 같다. 봄은 언제나 스미듯 찾아온다. 아랫 동네에는 벌써 벚꽃이 활짝 폈다. 저녁에는 부모님과 산책을 다녀왔다. 동네의 명소인 벚꽃 터널도 걸었다. 걷다 보니 빛이 좋은 시간에 와서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보는 꽃과 밤에 보는 꽃은 다르니까. 엄마는 강둑 위로 기차가 지나가자 "기차야 기차야, 소리내고 가지마라, 소리 내면 마음이 설렌다"라는 시적인 말을 했다. 내가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 보자 누군가가 알려준 노랫말이라고 했다. 

 

집에만 있다 급하게 마스크를 하고 산책을 다녀온 건 곧 비 소식이 예보돼 있기 때문이다. 계절은 언제나 비와 함께 찾아왔다 비와 함께 물러간다. 봄비는 낙화를 부추긴다. 지우개처럼 봄의 절정을 슥슥 지우고는 아무렇지 않게 또 다른 봄을 준비한다. 나는 비를 좋아하지만 벚꽃이 만개할 무렵의 비는 늘 아쉽다. 아쉬울 때는 아쉬운 사람이 움직여야 하니까 내가 더 부지런히 다니면서 꽃잎을 마음에 담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차가 어떻게 소리를 내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일까. 결국 설레는 마음만은 어쩌지 못한다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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