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작은 비타민

2020. 6. 20. 00:10 from 외면일기

 

 

 

 

조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내가 신생아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래도록 본 것은 27년 전 남동생을 만난 이후 처음이다. 그 사이에 목도 가누지 못하는 이런 갓난아기를 만난 기억이 없다. 27년 전 나는 남동생 옆을 잠시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기가 누워있는 흔들 침대를 살살 흔들어주고 엄마를 졸라 우유를 먹이고 심지어 포대기로 업어주기도 했다. 나 역시 9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는데도 동생을 사랑스럽고 지켜주고 싶은 존재로 인식했던 것 같다.

 

조카는 그 이후 내가 본 신생아 중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다. 나는 원래도 아기를 좋아하지만 조카는 처음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버렸다. 입모양, 손짓, 발짓, 눈 깜박임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조카가 태어나고 나는 몸조리하는 언니를 위해 엄마와 함께 언니네에 잠시 와 있다. 엄마는 조카를 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모가 반해서 푹 빠져버렸네"라고 말했다. 조카는 놀 때도 잘 때도 맘마를 먹을 때도 응가를 할 때도 귀엽다. 특히 입이 야무지고 예쁘다. 너는 우주의 작은 비타민이라는 은유가 절로 나온다. 조카와 함께 하면 24시간도 모자란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일도 약속도 모두 미루면서 그저 조카를 안고 어르면서 시간을 보낼 궁리만 하고 있다. 좋아하는 감정이 매일 뭉게구름처럼 새롭게 피어오른다. 이모란 근사한 이름이다.

 

'외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슷하지만 결코 알 수 없는 일  (0) 2020.06.28
히피펌과 콩쿠르 머리 사이  (0) 2020.06.26
한 잔의 물이 필요한 순간  (0) 2020.06.15
벚꽃산책  (0) 2020.03.25
오래된 빵집  (0) 2020.03.23
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