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창을 열어두고 깊은 낮잠에 들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 외출을 해도 좋았겠지만 주말에 결혼식과 약속이 겹쳐 있어 오늘은 집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한낮에 침대에 누워 책을 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표정에 들어간 힘이 풀리고 눈두덩이의 긴장이 스르륵 빠져나가면서 계획 없는 잠에 빠져드는 일을 좋아한다. 열린 창으로 바람과 새 소리가 들어오면 잠결에도 웃음이 난다. 이건 내가 온전한 휴식이라고 부르는 상태다. 낮잠이 있는 삶. 한낮의 잠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이전과는 다른 에너지가 마음에 채워져 있다. 나른하고 무엇이든 가볍게 할 수 있는 힘이다.

 

또 하나의 온전한 휴식 상태는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코로나 시대라 예전처럼 어딘가에 가서 몸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집에서 간단히 요가와 스트레칭은 할 수 있다. 얼마 전에는 가족과 멀리 등산을 다녀오기도 했다. 등산 전 날 엄마는 내 발에 딱 맞는 튼튼한 등산화를 사줬다. 산에 오르던 날은 소나기가 내렸는데 덕분에 처음으로 우중등산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길이 미끄러우면 더 조심하면 되고 젖은 옷은 다시 떠오른 태양과 바람에 생각보다 금방 마른다. 그 뒤로 집에서 가까운 산에 또 다녀왔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힘이 들면 사과와 오이와 초콜릿을 먹으며 쉬어 갔다. 정상에 오르자 저 멀리 다른 산들이 보였다. 신기루처럼 보일 만큼 먼 곳까지 보였다. 그 산세는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전 그대로도 아니었다. 산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도 달라졌을 것이다. 오랫동안 풍경에 안부를 묻다 다시 왔던 길로 내려왔다. 

 

우리의 몸은 때로는 아무런 움직임을 허용하지 않다가 때로는 격렬한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 휴식의 감각은 무와 유 사이에 천연덕스럽게 자리잡는다. 나는 그때마다 한 잔의 물을 마실 때처럼 몸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제대로 마신 물은 언제나 몸과 마음에 꼭 맞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외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피펌과 콩쿠르 머리 사이  (0) 2020.06.26
우주의 작은 비타민  (0) 2020.06.20
벚꽃산책  (0) 2020.03.25
오래된 빵집  (0) 2020.03.23
꽃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네  (0) 2020.03.21
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