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히피펌을 했다. 미용실에 가기 전부터 이미 히피펌을 하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지만 막상 디자이너 선생님과 마주하자 "제게 어울릴 만한 스타일을 추천해주세요"라는 다소 보수적인 말이 나왔다. 선생님은 거울 속의 나를 빤히 보다가 "히피펌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독심술이라도 하는 걸까. 그렇게 머리에 작은 롯드가 빈틈 없이 돌돌 말리고 뜨거운 바람을 쐬었다가 중성화 과정을 거쳐 뽀글뽀글한 머리가 완성되었다. 새로운 머리를 한 내 모습은 낯설었고 조금 자유로워 보였다.

 

펌을 하고 며칠 뒤 언니 집에 놀러갔다. 머리카락을 정수리에서 돌돌 말아 묶었는데 이전과 달리 부피가 꽤 커졌다. 언니는 머리를 묶은 내 모습을 보며 "마치 그때 같네"라고 말했다. 나는 금세 알아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그때란 9살 즈음 우리가 함께 피아노 콩구르에 나갔을 때를 말한다. 어린 시절, 언니와 나는 나란히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때때로 지역의 작은 콩쿠르에 참가하곤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우리 둘을 미용실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언니의 몇 가닥 없던 앞머리가 수레바퀴처럼 동그랗게 말렸고 귀 옆 애교머리는 사연 많은 시냇물처럼 굽이굽이 꺾였다. 내 머리카락은 빈틈없이 끌어모아져 동그랗고 단단하게 말려 작은 조화들의 화분이 되었다. 중간중간 작은 진주들까지 알알이 박히면서 아방가르드 속의 섬세함이 완성됐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하지만 예술작품을 머리에 이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피아노 발표회가 있었던 날이었기에 나의 불안은 커졌다. 나는 물었다. "엄마, 나 지금 피아노 치러 가는 거 아니지? 집에 가고 싶어." 나는 어렸지만 수많은 꽃이 달린 머리를 하고 집에 갈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이의 현실부정이자 소망이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언니는 지금의 머리가 그날의 예술작품을 연상시킨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른이 된 나와 어린 나 사이에는 어쩌자고 이런 취향의 강이 흐르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도 화분이 된 머리를 이고 다니던 그날을 떠올릴 수 있다. 건널목을 건널 때 아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할까봐 두려웠던 마음. 나에게만 켜진 스포트라이트를 서둘러 끄고 싶은 마음. 그때는 스포트라이트가 뭔지도 몰랐지만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어떠한 힘이 머리 위를 따라다니고 있음을 분명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런 과장된 화려함이 어색하고 심지어 부끄러웠다. 하여간 몹시도 화려하고 화려하며 화려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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