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져야지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무언가 명확한 형태를 보고 싶을 때는 조도를 낮춰야 한다. 인위적인 형광빛을 끄고 눈이 시끄럽지 않도록 빛의 밝기를 낮추면 그제서야 사물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사방이 밝으면 시야는 오히려 흐려진다. 한낮의 강렬한 빛 아래에서는 사람도 물건도 색을 잃어 버린다. 빛의 열기에 초점도 나가버린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싶다면 오히려 조명을 하나 둘 끄고 꼭 필요한 빛만 남겨둘 필요가 있다.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조도를 낮추기 좋아하는 시간대는 새벽이다. 새벽에는 많은 것이 선명해진다. 물기를 머금은 푸른 공기 속에 가만히 앉아 내 안의 빛을 줄이는 작업을 하다 보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점점 사라진다. 작은 불빛은 내게 있는 것, 내가 남기고 싶어하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면 나는 하나의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주변이 다시 서서히 밝아져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는 듯 존재감을 드러낼 때도 나는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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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