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9시다. 거의 9시간을 잤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열고 식물을 창가에 내놓는다. 오늘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매일을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쓰고 지우면서 보내고 있으므로 하루 정도는 의식의 흐름대로 보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어젯밤의 반성 때문이다.
어제 저녁 오랜만에 마스크팩을 하려고 냉장고를 열어 보니 30분간 붙여야 하는 팩만 남아 있었다. 30분이라니 너무 길잖아, 시간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시간은 없지 않았다. 할 일 없는 저녁이었고 팩을 하고 내킬 때 자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을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니까 내게는 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오늘 아침만 해도 요가를 하다가 동작을 서둘러 넘어가려고 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기하며 호흡을 고른 후 천천히 구령을 붙이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몸을 움직이니 땀이 슬며시 배어나왔다. 요가를 마치고 아침에 마시던 차를 마저 내려서 읽고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시간은 늘 거기 그대로 있다. 두서 없이 지나가는 건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이고 흩어지는 건 언제나 내 생각의 조각이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현재에 온전하게 머무를 수 없다. 여기 있지만 여기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럴 때는 요가를 할 때처럼 생활에 구령을 붙여주는 것도 괜찮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다 보면 언제나 지금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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