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왠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진다. 오늘은 가을맞이 셀프 단발컷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직접 커트를 시도했지만 화장실 거울 앞에서 몇 번의 가위질을 해 본 결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기꺼이 미용사가 되어준 건 언니다. 언니는 3일 전부터 예약되어 있던 손님을 받는 헤어 디자이너처럼 자연스럽게 가위를 잡더니 섬세하고도 남다른 정성을 보여줬다. 커트에 대한 그의 참되고 진실한 마음은 시간의 흐름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커트를 시작할 때 중천에 떠 있던 해가 머리가 완성될 때 즈음에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 밖에는 깜깜한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중간에 이 정도면 좋아, 나는 만족해라고 말했지만 그의 빗질은 멈추지 않았고 아직 멀었다는 말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때쯤 우리의 얼굴색은 실온에서 갈변한 사과처럼 이미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커트가 끝나고 바닥에 흩뿌려진 머리카락을 치우면서 언니와 나는 이 세상에 왜 미용실이란 곳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곳에서 요구하는 비용은 또 얼마나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언니는 덧붙였다. "그런데 있잖아. 정말 마음을 다해서 잘랐어. 그건 알아줘야 해." 아니, 모를 수가 없잖아. 나는 그냥 단발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다해 자른 단발머리를 한 사람이다. 목 언저리가 몹시 가벼워졌고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면 가지런한 머리칼 너머로 산뜻한 감각마저 느껴진다. 무엇보다 마음을 다했다는 그 말이 목 둘레를 포근하게 감싸서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더라도 나는 따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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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