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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 창문 앞에 서 있으면 저 멀리 기찻길이 보인다. 창을 열어 두면 기차 소리가 들려온다. 조카는 기차라는 존재를 알게 된 뒤부터 다른 놀이를 하다가도 기차의 엔진 소리가 들리면 품으로 호다닥 안겨온다. 나를 안고 빨리 일어나 저기 지나가는 기차를 보여달라는 의미다. 안아서 재빠르게 창가로 가면 기차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면서 이제 막 소리 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치, 치, 콕! 콕!”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이면 그런 조카의 존재가 눈 앞에 귓가에 떠오른다. 밤이 되면 기차는 더 선명한 소리를 내며 노란 빛을 은은하게 뿜으며 달린다. 어둠을 헤치며 철로를 따라 긴 몸을 부드럽고 완만하게 이끌어나가는 밤기차. 나는 서울로 향하는 밤기차 안에서 이 아름다운 몸짓을 조카도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창 밖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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