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밤이었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르겠는걸, 하고 아야코는 생각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져 버리는 활짝 핀 벚꽃을, 아야코는 툇마루에 앉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일찍이 이렇게 숨을 죽이고 바라본 적은 없었다. 부풀어 오른 엷은 분홍색의 커다란 면화가 파란 빛의 테두리를 두르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톡톡, 톡톡 줄어가는 요염한 생물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아야코는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신기한 밤을, 벚꽃과 함께 깨어 있자고 마음 먹었다. (중략) 아야코는 그렇게 언제까지고 밤 벚꽃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고, 그 안에 문득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아아, 이거구나, 하고 아야코는 생각해 보았다. 대체 뭐가 이것인지 아야코로서도 분명히 알기는 어려웠지만, 그녀는 지금이라면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는 방법을, 오늘이 마지막인 꽃 안에서 일순 본 것인데, 그 아련한 기색은 밤 벚꽃에서 눈을 떼면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밤 벚꽃'
송림 너머로 기차가 지나간다. 요란한 엔진 소리가 멀어지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여기 오는 사이 에어팟을 땅에 떨어뜨렸다.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다 둔탁한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에어팟 케이스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서둘러 주워 먼지를 털어내 보지만 털어지지 않는 묵직한 자국이 남아 버렸다. 살펴보니 벚꽃잎 두 장이 묻어 있다. 케이스를 열어 왼쪽과 오른쪽 빈 공간에 꽃잎을 한 장씩 넣고 다시 걷는다. 속상한데 안 속상해, 이상하네, 생각한다.
오는 동안 꽃비가 계속 내렸다. 꽃잎은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팟캐스트에서는 오늘 결혼한 두 남녀가 밤 벚꽃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린다. 소설 속 인물들과 내가 보는 풍경이 똑같네, 신기하네, 생각한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저녁 7시가 되자 가로등에 빛이 일렬로 들어온다. 벚나무에 빛이 번져간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일어나 집을 향해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