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은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존재의 순간들(moments of being)'이 떠오르는 영화였다. 영화는 내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또는 가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화의 오프닝인 4인 가족 댄스경연대회가 일부 하고 있는 것 같다. 댄스대회에 참가한 가족들은 서로 동작을 맞추고 균형을 잡으며 같이 춤을 춘다. 양의 가족은 백인, 흑인, 동양인, 인간 모습의 로봇인 양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니까 양은 로봇이지만 4인 가족의 1인으로서 춤을 춘다. 양의 가족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수많은 가족들이 다인종으로 구성돼 있다. 서로 다르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이들은 하나의 댄스팀으로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대회에 임한다. 춤으로 비행을 하고 전투에 나가고 균형을 잡는가 하면 전환, 폭발, 지진, 토네이도까지 겪어낸다. 가이드는 가족들에게 "계속 함께하세요"라고 말한다. 그 지시는 마치 가족이 된다는 것은 동작을 맞추고 함께 춤을 추는 댄스팀이 된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영화는 양이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양은 중요하다고 또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자신의 기록장치에 저장한다. 그것은 외부에 대한 양의 시선이자 양의 기억이며 궁극에는 양 자신으로 남는다. 기억에는 가장 안쪽에 숨겨진 기억이 있고 비교적 바깥에 위치한 기억이 있다.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그의 층위별 기억을 보여주는데 이 기억들은 다른 가족의 기억과 함께 배치돼 인물 간의 거리를 좁혀간다.
이쯤에서 나는 기억이 가질 수 없는 한 가지 속성과 마주친다. 그것은 객관성이다. 사건과 사람과 장면에 대한 인상은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과 관찰을 통과해 제각각의 모습으로 의식과 무의식에 안착한다. 그래서 기억에는 왜곡이 필연적이다. 기억이 한 존재의 전부이자 한계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의 가족은 양이 편집한 기억을 통해서 양을 만나고 양의 눈길이 머문 자신들의 뒷모습을 본다. 결코 똑같은 모습으로는 포개어질 수 없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기억들이 겹쳐지자 비로소 이해라는 단어에 조금 더 다가간다. 그것은 양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타인에 대한 이해에는 언제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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