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염려증 환자

2012. 8. 13. 16:56 from 외면일기

 

 

 

 

한 동안 열대야 때문이었는지 새벽에 깨는 일이 종종 있었다. 대개 새벽 3시 40분에서 4시 30분 경이었는데 그때마다 눈이 번쩍하고 떠져 멀뚱거리다 책을 좀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다시 잠에 빠져드는 식이었다. 이제는 한바탕 비도 내리고 지루하던 열대야도 끝나서 잠을 좀 자겠구나 했는데 어젯밤 다시 3시 40분 경에 일어났다. 온 몸이 너무 가려웠다. 스탠드를 켜고 일어나 몸을 살피는데 다리에 모기에 물린 것과 같은 부푼 흔적들이 셀 수 없게 많은(상상만으로도 다시 징그러운) 상태였다. 그 흉칙한 모양에 놀라서 그럴 일은 없길 바라면서 벽과 창문과 바닥과 침대 등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벌레 같은 건 없었다. 그때부터 병원 문이 여는 아침까지 긁다가 자다가 도저히 걱정이 되어 증상에 대해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가끔 어딘가 아프면 증상을 집요하게 추적해 들어가는 버릇이 있는데 기어코 끔찍한 병명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구글링을 멈추곤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의사 났네 시즌2>를 찍는 기분으로 열심히 검색을 해보는데 끔찍한 사진들만 나와서 평소처럼 아주 집요하게 하진 못했다. 새벽이라 비위가 많이 약해진 탓도 있고.

 

아침이 되자 빛의 속도로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진찰실에서 선생님은 커다란 돋보기로 피부 여기저길 살피더니 "두드러기네. 뭐 먹었어?"라고 물었다. '분명 특별한 걸 먹었을텐데?'라는 확신에 찬 어조였다. 기억을 더듬어 어제 먹은 것들을 설명하다 혹시나 해서 "벌레 같은 것에 물린 건 아닌가요?" 물었다가 '제발 모르는 소리 좀 말라'는 어조가 깃든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결론은 무언가 섭취했는데 몸이 못 받아들여서 생긴 반응이니 주사 맞고, 염증이 어느 정도인지 봐야하니 피를 뽑고 가라는 것이었다. 연고도 주냐고 물었다가 다시 '얘가 진짜 뭘 모르네'라는 어조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럴 때 연고를 바르는 건 배 아플 때 피부에 빨간 약 바르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으니 주는 약이나 잘 챙겨먹어라."는 것이었다. 시킨대로 주사 맞고 약을 먹고 나니 가려움증도 가시고 염증도 가라앉았다.

 

아무튼 가끔 <의사 났네> 시리즈를 찍을 때마다 나의 급조된 호기심과 일을 확대시키는 왕성한 에너지에 감탄하곤 한다. 괜히 심각해져서는 검사라도 받으면 대부분 '스트레스성'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내가 실은 다른 병이 아니라 건강염려증 환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의사 선생님, 예전부터 누굴 닮았다고 했더니 일전에 만났던 거드름 대장 식아저씨와 닮았다. 하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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