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지 않을 때, 스스로를 그 기분에서 구해내기 위해 저마다 취하는 행동들이 있다. 내게도 그런 것이 있는데, 그 중 특이할 만한 것이 음악감상이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슬플 때는 만화 주제곡을 듣는다.

 

캐럴은 언제 들어도 좋지만 특히 여름(그 중에서도 새벽 무렵이나 한밤중)에 들으면 더 좋다. 이 이야기를 하자 언니는 캐럴을 들으면 슬픈 기분이 되어서 싫다고 했다. "한 해가 끝나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는 크리스마스 전에 듣는 캐럴에서 느껴지는 트릭적 감성이 마음에 든다. 사실 많은 날들이 대개는 크리스마스 전이고, 그런 날들에 캐럴을 들으면 '아직 한 해가 끝나려면 멀었지'라는 우쭐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다. 캐럴을 들을 때는 얌전히 듣고 있기보다는 중간중간 스타카토 허밍으로 화음을 맞추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야기다.

 

만화 주제곡의 경우는 웬만해서 허밍으로 해결되지가 않는다. 허밍을 하다가도 어느덧 노랫말을 따라 부르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즐겨 듣는 만화 주제곡은 신신데렐라의 '오늘은 기분이 좋아', 베르사유의 장미의 '나는 장미로 태어난 오스칼', 뾰로롱 꼬마마녀의 '뾰로롱 꼬마마녀'이다. 방금 언급한 제목들이 본 제목인지는 모르겠으나 오프닝 때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것이 기분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 대체적으로 만화주제곡에 등장하는 단어라는 것이 무지개빛 미소, 행복의 가게, 우리 친구 사이, 눈동자, 하늘, 날개, 오래 전부터 바라던 꿈, 아름다운 꽃, 즐거움, 정열, 화사, 순결과 같이 고운 것들이고,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모두가 아름답다' 라든가 '고민이 있으면 숨기지 말자' 라든가 '오늘은 기분이 좋다' 라든가 '즐겁게 살아요' 등의 선동 문구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서 듣다 보면 어쩐지 '그래, 그래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만화 주제곡의 경우는 대개 가사를 소리내 따라부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무척 답답하거나 정리가 필요할 땐 오래도록 걷거나 글을 쓴다. 이상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만의 적극적인 방법인데, 좀 덜 적극적인 방법도 있다. 잠을 자거나 먹거나 우는 것들이다. 아주 소극적인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인데, 그러면 기분이 풀리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아무래도 '장미 장미는 화사하게 피고 장미 장미는 순결하게 지네~'와 같은 노래를 힘내서 따라 부르는 편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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