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네가 어떤 일에도 손댄 적이 없다는 사실, 조각을 한 적도 없고 그림을 그린 적도 없으며, 자기 자신 외에는 어떤 것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네! 삶 자체가 자네의 예술이었으니 말이야. 자네는 자기 자신을 음악으로 만들었어. 자네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바로 소네트라네."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中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인간이 삶에 대한 책임(여기에서는 늙음과 추함)을 지지 않게 되었을 때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한 인간이 타자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시대적 표현으로 헨리 경은 도리언의 멘토이다. 한 인간을 성숙시키고 있다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며 헨리 경이 내뱉는 말들은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고 아름답다. "성장이 정지된 삶을 제외하면 망가진 삶이란 없다."고 말하며 도리언을 부추기는 이 열정적이고 세련된 인물은 도리언이라는 가능성 있고 아름다운 청년에게 자신이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기분의 함정에 빠져 있다. 이 시대의 멘토들이 왕왕 그곳에 빠지듯 말이다.
"긴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은 기껏해야 한 번뿐이지만, 이 경험을 가능한 자주 재현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사는 비결이란다."
동성연애 혐의로 2년간 감옥 생활을 하기도 한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대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라 밝힌 바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한 유미주의자로 "모든 예술은 전혀 쓸모없으니" 예술을 유용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아예 생각도 말라며 유미주의적 예술관을 분명히 드러냈다.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인간의 기본 덕목(고대 철학에서는 불굴의 의지, 정의, 신중한 태도, 절제를 기본 덕목으로 한다)도 반쯤 식은 앙트레를 보상해줄 수는 없다'와 같은 소설 속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자신의 아름다움과 쾌락을 탐닉하던 도리언도 궁극에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전 이미 열정을 다 잃어버린 것 같아요. 욕망이 뭔지 잊은 것 같단 말이에요.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어요. 나만의 강렬한 매력이 이제는 짐이 되어버렸다고요."
악한 생각과 의도는 자신을 품은 이의 입꼬리와 눈빛에 슬금슬금 기어들어 한 사람의 결정적 인상을 완성한다. 저 소설 속 표현대로 차라리, 가장 공정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가 아닌 ‘우리 죄를 벌하시고’가 되어야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미주의를 지향했지만 어쩐지 이 소설은 '아름다움은 악이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노년의 비극은 사람이 늙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겉은 늙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젊다는 데서 온다"던 오스카 와일드의 말과는 반대로 도리언 그레이의 비극은 겉은 젊고 아름답지만 마음은 노추로 엉켜 있다는 데서 온다.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용서받는다. 그것이 때때로 비극의 서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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