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영국. 쿠바 음악이 레게와 라틴의 자리를 밀어내고 새로운 여름 음악으로 등극했다. 1996년,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는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은 가장 뛰어난 쿠바의 뮤지션들을 모아 앨범을 녹음했다. 이것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90년대 명반에 포함되기도 한 이 앨범의 국제적인 성공은 국내와 해외에서 오랫동안 간과돼 온 베테랑 뮤지션들의 이력을 다시 살아나게 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그들의 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쿠바 뮤지션들의 감성과 인터뷰에서 인터뷰로 이어지는 구성. 영화는 이런 식이다. 냇킹 콜에 비견되는 이브라힘 페러를 내레이션으로 소개하는가 싶더니 어느덧 이브라힘이 직접 카메라를 쳐다보며, "전 이브라힘 페러입니다. 쿠바 산티아고의 작은 마을 산루이스에서 태어났죠. 어머니의 이름은 오렐리아였어요. 어머니만 있었죠. 이 얘길 하는 이유는 내가 누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직접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난 12살 때 어머니를 잃었어요. 아버지는 훨씬 전에 돌아가셨죠. 형제도 없었기 때문에 난 혼자가 됐어요."
나는 인터뷰를 좋아하는데, 기왕이면 윤문이 개입되지 않은 글이 좋고, 더 기왕이면 인터뷰이가 손깍지를 끼거나 손바닥이 보이게 원을 그리며 직접 자신을 설명하는 것을 듣는 걸 좋아한다. 그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당사자에게서 직접 듣는 것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루벤이랑 난 가볍게 생각했죠. 우린 둘다 즉흥곡을 좋아해요. 그래서 함께 노래를 했어요. 난 '이봐, 이 곡을 쳐봐' 하고 노래를 불렀죠. '치자꽃 두 송이를 그대에게 주었네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서 내 사랑 그 꽃은 당신과 나의 심장이 될 거요' 라이가 이 노래를 들었죠. 별 뜻 없이 긴장을 풀려고 부른 거죠. 그런데 라이가 그걸 녹음한 거예요."
인터뷰 후 이브라힘은 '치자꽃 두 송이를 그대에게 주었네'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른다. 영화 후반부에 그는 말한다. "일자리도 잃고 아무도 날 찾지 않았어요. 이러다 굶어 죽는 걸까? 천만에. 구두도 닦고 복권도 팔아야지. 쓰레기통이라도 뒤져야지. 난 부양할 가족이 있거든요. 난 이런 얘기가 부끄럽지 않아요. 어느 날 오후, 누가 날 찾아왔어요. 후안이었죠. 난 그때 구두를 닦고 있었어요. 후안은 묻더군요. '지금 뭐 하는 거야?' '여기서 구두 닦고 있지', '자네 목소리가 꼭 필요해' '언제? 내일?' '아니, 지금', '목욕이나 하고'라고 하니 '안돼, 당장'이라고 해서 세수만 하고 구두의 먼지만 털었죠. 그렇게 스튜디오에 갔어요. 루벤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는데 날 보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어요. 난 그렇게 다시 노래를 시작했죠."
한 사람 한 사람씩 인터뷰를 계속 이어나간다. 눈썹을 에디트 피아프처럼 그린 오마라는 길거리를 지나며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노래를 부른다. "당신의 사랑이 식어 버렸다면 내 맘이 무슨 상관인가요 지난날의 사랑은 잊어야 해요 한때 난 당신 인생의 전부였는데 이젠 과거의 사람이 돼 버리다니 그때 모든 게 우리의 뜻대로 됐더라면 당신은 20년 전처럼 날 사랑하고 있겠지"
대부분 자신이 몇 년도에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는지,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다음은 루벤 곤살레스의 인터뷰다. "산타 클라라에서 태어났어. 1919년 생. 7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어. 우리 집엔 피아노가 있었는데 아주 훌륭한 피아노였지. 연주가용이라 정말 근사했어. 난 그 피아노에 푹 빠져서 하루종일 피아노를 치곤했지(공원에 있던 루벤이 공중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마치 거기에 피아노가 있는 것처럼). 공부도 많이 했어. 내가 피아노에 소질을 보이자 어머니는 개인 레슨을 시키셨지. 1단계부터 배웠어. 다음은 2단계, 3, 4, 5, 6, 7, 그리고 8단계... 그때 선생이 말했어. '넌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거야. 넌 정말 재능이 있어.'"
다음 장면은 루벤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베이스와 기타, 드럼, 트럼펫 주자들이 보여주는 하모니. 악기 앞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잘 갖춰입고 있다. 루벤은 그의 턱을 덮고 있는 하얀 수염과 썩 잘 어울리는 하얀 양복을 입고 있다. 다음은 강당에서의 루벤. 그가 강당에서 연주를 하면 그곳에서 발레와 체조를 배우던 어린 아이들이 음악에 몸을 맞춘 듯 섬세한 몸짓을 선보인다. 루벤의 피아노 선율이 아이들의 동작을 감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동작이 피아노 선율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발레하는 여자아이들의 표정은 진지하면서 수줍고, 체조하는 남자아이들의 동작은 재빠르고 유연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쥐고 있는 펜싱의 검 끝은 날카롭다. 하바나에 와서 루벤은 놀랐다고 말한다. “피아니스트가 정말 많았거든. 그래서 새로 공부를 시작했어. 옆집에 알세뇨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훌륭한 밴드를 운영하고 있었어. 알세뇨는 내게 말했지. '루벤, 나랑 같이 일하지 않겠나?' 난 '물론'이라고 대답했어."
우두 드럼을 연주하는 남자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쿠바는 타악기의 천국이다. 음악적 열정으로 가득한 곳. 우두 드럼의 '쿵쿵' 소리를 들으면 모두들 재미있어 했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 웃었다. 난 그 웃긴 악기를 연주하기로 했다. 우두 드럼 소리는 구별해내기 어렵다. 타악기를 연주하는 동안 쉬는 부분에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아주... 이상한 느낌이다. 이 악기 때문에 60년대나 그 어느 때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기한 연주가 된다. 푼틸리타는 내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 모두가 타악기 연주자 같았고 비전문가가 오히려 최고 같았다. 정말 어려운 가벼운 터치도 해낸다. 이곳 사람들의 가르침은 색다르다. 섬세하고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가졌다."
그들의 인터뷰 뒤, "이 모든 일은 어떻게 시작됐던가..."라는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인 7월 1일 카네기홀에서의 공연. 그곳에서 붉은 자켓에 빵모자를 눌러 쓴 이브라힘이 친구들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관객은 기립박수를 보낸다. 이브라힘은 마치 박수라는 것을 처음 받아보는 아이처럼 그들을 쳐다본다. 그는 인터뷰에서 오래 전부터 간직해온 부적을 보며 말한다. "내 부적이랑 내게 온 행운은 다 어머니 덕이죠. 난 이걸 58년간 믿어왔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계속 간직했죠."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전부 이야기하고 싶거나 아무것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결국 부분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라도 끄적거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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