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오스카

2013. 1. 6. 22:23 from 외딴방

 

"친애하는 오스카!"

난쟁이 베브라는 오스카를 볼 때마다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이 지나치게 공손하고 위엄있는 표현을 건네며 악수를 청한다. 3살 때 어른들의 부정을 보며 스스로 성장을 멈춘 오스카. 베브라는 오스카를 보자마자 자신의 곡예단에 들어오라고 하지만 오스카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저는 구경꾼으로 살고 싶어요." 그러자 베브라가 말한다. "우리 같은 사람은 구경꾼이 아니라 구경거리로 살 운명이야."

 

 

 

 

<양철북>은 미장센의 힘이 강하다. 특히 바다에서 건져올린 당나귀 머리의 귀와 콧구멍, 입과 찢어진 살 사이에서 꿈틀대는 장어들을 클로즈업한 장어낚시 장면이 압권이다. 처음에는 낚시에 사용된 미끼가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라 생각했을 정도로 장면의 괴기함은 상상을 넘는다. 당나귀의 얼굴 속에서 신나게 살을 파먹고 있는 장어들을 보며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는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는 반면, 아버지 알프레드는 당나귀 머리로 건져올린 살 오른 장어를 사와 집에서 요리를 준비한다. 아그네스는 남편이 만든 요리를 울면서 거부하지만 얀의 위로 후 결국 장어요리를 입 안에 쑤셔넣고 우적우적 먹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 아그네스는 서서히 마음에서 뭔가를 내려놓게 되고, 정어리 통조림을 손으로 떠먹거나 날 생선을 손에 쥐고 씹어먹는 이상 증세를 보인다. 슬프면서도 괴괴한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엔 생선이 자주 등장한다. 아그네스를 뒤쫓아 호텔로 따라 들어가려던 오스카로 인해 길을 지나가던 자전거 한 대가 넘어지는데, 그 장면에서도 자전거에 실려 있던 생선들이 바닥에 철퍼덕 철퍼덕 떨어져 나뒹군다. 

 

1959년 발표해 독일 문단에 큰 충격을 주며 훗날 노벨 문학상을 받은 권트 그라스의 처녀작 『양철북』은 70년대에 슈렌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된 뒤에도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성장을 멈춘 아이로 설정되는 오스카 역의 데이비드 베넨이 촬영 당시 13살이었음에도 성적인 장면을 노골적으로 촬영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3살 때 스스로 성장을 멈춘 후 시종일관 무표정했던 오스카는 20살이 되었을 때 문득 이제 다시 자라도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데, 영화는 그 사이 17년의 시간 동안 성장을 멈춘 한 인간이 겪는 성(性), 죽음, 전쟁, 이념, 그리고 성장을 멈춘 한 인간에게 세상이 가하는 가학적인 행동들을 보여준다. 그 면면이 요지경스럽다. 이 영화가 안고 있는 상징은 무척 많은데, 오스카가 3살 때부터 갖게 된 양철북과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를 때마다 깨지는 유리들도 그 중 하나다. 태아로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세상에 나오고 싶어하지 않았던 오스카는 "3살이 되면 양철북을 사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렇다면야' 하며 태어나기로 결심한다. 양철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행위. 그것이 세상에 저항하는 오스카의 방법이었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선택과 저항의 자유를 받아들인다는 것과 다름이 아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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