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모내기하며 읽고 있는 책들이 한아름이다. 예전에는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야 다른 책으로 넘어가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러 권을 같이 읽는다. 침대에서, 책상에서,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읽는 책이 나뉘어져 있다. 한 가지 책만 읽을 때보다 즐거움이 몇 배 늘어난 기분이다. 가끔은 해야 할 일 없이 하루 종일 누워서 모내기 하고 있는 책들을 마저 읽으며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정작 시간이 난다고 해도 책만 읽고 있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냥 해보는 유유자적한 생각이다. 그래도 확실히 책만 실컷 읽을 수 있는 날에 대해서 생각하면 마음이 두둥실 가벼워진다. 반면 책 한 페이지 읽지 못할 만큼 상황에 쫓기는 날에는 마음이 불안하다. 일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은 뭔가 잘못 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이 바쁠 때 일부러 책을 한 권 주문했다. 서점에 갈 때마다 한 번씩 보던 책이었는데 직접 사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제 내일이면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매일 6분씩만 시간을 내서 책을 읽어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글을 읽었다. 6분이면 별 것 아닌 시간 같지만 정작 이 시간조차 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본다. 실제로 잠 들기 전 책을 두세 쪽 읽는 것과 그렇지 못할 때 마음의 이완 상태가 달라짐을 느낀다. 독서는 다른 사람이 관점을 가지고 쓴 이야기를 읽는 것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책에는 시선과 목소리가 존재한다. 내 생각 너머의 다른 생각, 내 일 너머의 다른 일, 내 삶 너머의 다른 생활 양식이 거기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의 굳은살을 떼어내고 내게 밀착된 일에서 나를 분리시키는 행위다. 내 머릿속의 작은 창문을 열고 환기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일이다. 새 공기가 흘러 들어오면 묵은 공기는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은 희미해지고 많은 것이 새롭게 재구성된다. 매일의 짧은 환기만으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서 있을 수 있다.
'밑줄을 긋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에서 돌아온 시선 (0) | 2020.08.24 |
---|---|
대충 할 수 있는 사람 (0) | 2019.10.31 |
한 줄 다음에 또 한 줄 (0) | 2019.08.03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0) | 2019.07.23 |
모든 인연이 가치로운 것은 아니다 (0) | 2019.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