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목은 《디스옥타비아》에 "다시 한 번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면. 책장을 넘기다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면"이라고 썼다. 그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썼고 "내가 수없이 그 까닭을 되짚었던 일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일들은 그저 몰라도 되는 일들이었다"라고도 썼다. 2059년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속에는 '충분히 늙고, 시간을 경험하고, 한 생애를 간직한' 78세의 여성 '모'가 있다. 그는 미래를 통해 지금을 바라본다. '모'에게는 젊은 시절이라고 부르는 때이고 우리에게는 바로 현재다. 형태가 명확한 미래에서 바라보는 과거는 그 안에 있을 때보다 더 분명하고 선명한 문장을 내어준다. 이를테면 "나는 먼 훗날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와 같은 식이다. 미래에서 돌아온 시선은 많은 사실을 재조합한다. 나는 그 시선을 따라가며 여기 이 시간을 어떻게 통과할지 생각한다.
사랑은 사랑으로 시간을 흐르게 한다. 고통은 고통으로 시간을 흐르게 한다. 욕망은 욕망으로, 편견은 편견으로, 거짓은 거짓으로, 제 나름의 시간을 흐르게 한다.
- 유진목, 《디스옥타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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