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탈 것만 타면 잠이 쏟아진다. 기차, 비행기, 배, 지하철, 승용차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 안에서는 누구보다 빨리 잠에 빠져들 자신이 있다. 특히 비행기에서는 침대에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잠이 든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며 흔들리기 시작하면 이륙도 하기 전에 나의 눈꺼풀은 딱풀을 붙인 듯 빈틈없이 붙어 버린다. 종종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의식적으로 창 밖으로 멀어지는 땅과 가까워지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대체로 요람 속의 아이처럼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한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 보면 이미 구름 위다. 기장이 스피커로 착륙 임박을 알리고 있을 때도 있다. 엄마는 그것이 멀미의 일종이라고 했다. 나는 탈 것에 대한 일종의 안심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멀미든 안심이든 발 아래가 구름인 세상에 있다는 사실은 즐겁다. 구름 위를 지나고 있다는 것은 내가 먼 곳으로 떠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태평양에 도착했다. 나는 몇 번이나 태평양의 파도에 몸을 실었다. 때로는 하늘을 바라보며, 때로는 물 속을 둘러보며 둥둥 떠다녔다. 한 번은 배를 타고 나가 마음 먹고 바닷속을 관찰하기도 했다. 새파랗고 새하얗고 새까맣고 샛노란 열대어들이 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사람이 기웃거리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흔들흔들 가는 선명한 존재들. 그 우아한 자태에 마음을 빼앗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들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물고기들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기뻤다. 내가 세상 저 편에서 어쩔 수 없이 상처 받을 때에도, 생각이 많아질 때에도, 행복을 느낄 때에도 이 크고 작은 물고기들은 이곳에서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고기의 호흡으로 물고기의 고민을 하며 물고기의 생활을 해나간다. 그 당연함에 작은 위안을 느끼며 물 속에서 한참을 보냈다. 그리고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바슬대는 모래알 사이사이에는 하얗고 분홍빛이 도는 산호와 빈 조개가 가득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산호를 몇 개 주워 손에 쥐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나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많은 것들을 그곳에 그대로 두고 다시 배를 타고 나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함께 오른 건 아름다운 실체에 대한 기억들 뿐이다. 바닥을 붕 하고 뜨는 비행기 안에서 멀어지는 바깥 풍경을 잠시 바라본다. 창 아래로 고요한 빛이 내려앉은 밤의 섬이 보인다. 빛이 점점 작아져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어김없이 잠에 빠져든다. 우리가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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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