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영감을 주고 받는다. 어떤 창작도 일방적이지 않다. 이건 내가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것조차 들여다 보면 100% 순도는 아니다. 거기에는 일상에서 본, 다른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좋아하는 작가의 말이나 역사의 언저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며칠 전 본 영화 <캐롤>의 토드 헤인즈 감독은 '사울 레이터'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마침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서 다녀왔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사울 레이터의 전시다. 사울 레이터는 사진을 통해서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고 그저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뉴욕 거리와 이웃, 물방울이 맺힌 창문 너머의 풍경, 연인의 미소, 동생의 몸짓을 포착해서 카메라에 담았다. 세상은 그에게 완벽한 구도를 갖춘 공간이자 색채를 가진 그림이었고 사진은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아름다움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사울 레이터는 다큐멘터리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에서 "세상 모든 것은 사진으로 찍힐 만하다"고 말했는데 그의 사진 앞에서 걸음이 멈춰 세워질 때마다 그 말의 뜻이 이해가 갔다. 그에게는 잘못 찍은 사진이란 없다. 오히려 명확하지 않고 흐릿한 초점 속에서 드러나는 형태와 색이야말로 세상의 진실에 가깝다. 나는 그의 사진이 사람들이 삶에 갖는 감정과 닮아있다고 느낀다.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선명하지 않고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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