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비울 때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식물의 안녕이다. 물 없이도 한동안 견디는 아이들도 있지만 당장 목 마른 티가 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와 보니 식물 하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시들어 있다. 아빠는 식물 걱정을 하는 내게 식물이 너무 목 마른 상태라면 물을 한꺼번에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처음에는 잎사귀부터 살짝 적시듯 주고 조금씩 물의 양을 늘려가며 전체적으로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식물이 놀라거나 체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아빠 말을 기억하고 처음에는 잎과 겉흙에만 물을 살짝 주고 시간이 흐른 뒤 샤워기로 물의 양을 늘려가면서 줬다. 그리고 한 밤 자고 일어났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날 기미가 없어 보이던 아이가 다시 힘을 내서 잎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힘을 내줘서 고맙다고 식물이 들을 수 있게 말하며 다시 원래 있던 창가에 내놓았다. 오랫동안 관심을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서둘러 뭔가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탈이 날 수 있다. 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조금씩 천천히 시간 들이는 방법을 식물을 통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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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