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중요하다.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당신을 믿고 있다, 나는 당신이 상처받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이 조심스럽다, 나는 당신이 좋다. 모든 것이 말을 통해 전달된다. 그래서 침묵은 무섭다. 침묵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당신을 모르겠다, 나는 당신을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당신이 귀찮다, 나는 당신이 싫다. 물론 침묵에는 다른 의미도 많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상대의 침묵이 나로 인해 말미암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은 관계를 차단하고 싶을 때 가장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대화 방법이다.
한때 침묵의 세계를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기꺼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침묵을 불편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인지하면서 내 침묵에는 가끔 미세하게 금이 가는 현상이 일어났다. 가령 어느 백화점의 VIP 라운지에 앉아서 공사 현장을 바라볼 때가 그랬다.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창 밖의 포크레인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나와 같은 걸 보고 있었다. 참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우린 그때 우리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단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한다. 특히 그가 고요 속에 떠다니는 덩어리를 말끔하게 분해하는 순간이 좋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말이 다일 때도 있는 것이다.
'외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골 카페가 사라지는 기분 (0) | 2012.06.02 |
---|---|
양금이가 죽었다 (0) | 2012.05.28 |
그러니 탓할 수는 없다 (0) | 2012.05.20 |
졸음에 겨운 날들은 지나갔다 (0) | 2012.05.05 |
얼어죽을 비교 프레임 (0) | 2012.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