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차예관에 갔다. 선생님과 오랜만에 차담을 나누고 숙차 두 편을 샀다. 거름망도 선물 받았다. 근처 한살림에 들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방을 청소하고 분리수거를 했다.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 안치고 주변을 둘러본다. 컵은 컵의 자리에, 수세미는 수세미의 자리에, 가위는 가위의 자리에 있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의 평온함을 좋아한다. 물건에 자기 자리를 찾아주는 일도 좋아한다.

 

나는 생활에 필요한 크고 작은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기억하는 편이다. 가족들과 함께 살 때도 누군가 손톱깎이를 찾으면 나는 공간과 물건의 위치를 시뮬레이션 해서 네, 그것은 화장대 두 번째 서랍 오른쪽에 위치해 있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곤 했다. AI 같은 대답에 방해가 되는 건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 가족들이었다. 가족 구성원 중에는 어지러움 속의 미학을 역설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단정함 속의 미학을 더 선호한다. 역시 그것이 나에게 만족을 준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여둘톡을 듣는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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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putnik.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