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과 첫눈과 파티

2022. 12. 14. 17:48 from 외면일기

 

 

 

어제의 일과를 되짚어본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 둘러앉아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하루였다.

 

# 주간회의를 마치고 동료들과 우동을 먹으러 갔다. 미슐랭 맛집으로 선정된 우동집이라고 했다. 우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음부터 따뜻해지는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우동은 듣던대로 면발이 쫄깃하고 맛있었다. 그렇지만 미슐랭에 선정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같은 메뉴를 먹던 동료가 내 마음의 메아리처럼 "맛있기는 한데 미슐랭에 선정될 정도인지는 모르겠어요"라고 육성으로 말한다. 그래도 따끈한 국물과 바삭하게 튀겨진 채소는 역시 다정한 느낌을 남긴다.

 

# 점심식사 후 옛 동네의 단골카페에 갔다.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일정을 부풀려 그곳에 들르는 시간을 꼭 넣곤 한다. 무산소 발효 원두를 100g 사고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 카페에서 나는 작은 소음에 귀를 기울인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공간의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다. 커피가 나왔다. 부드러운 거품이 올라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간다. 문득 고개를 드니 창밖으로 흰 눈이 내리고 있다. 내가 목격하는 올 겨울 첫눈이다. 눈은 내가 카페를 나설 때까지 내렸고 길을 걷는 내내 옷에 소복소복 기분좋게 쌓였다. 가방에서 작은 꽃무늬 우산을 꺼내 펼쳤다. 우산 속 봄꽃 위로 하얀 눈이 미끄러져내린다. 

 

# 저녁에는 대학로의 한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같이 일해온 사람들과 2년만에 송년회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들과는 매달 한두 번 연락하면서도 결코 만나는 법이 없다. 친하다는 감정도 불편하다는 감정도 없는 사이다. 그 건조함이 오히려 안전한 테두리가 되어준다. 테이블에는 맛있는 음식과 와인이 잔뜩 준비돼 있고 벽에는 'THANK YOU' 모양의 풍선 8개가 붙어 있다. 식사 끝에는 랜덤으로 선물 교환식을 가졌다. 나는 내가 만든 컵을 선물했고 손난로와 핸드크림을 선물 받았다. 이들은 스스로 선택한 기발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 굳건함과 생기에 나는 기분이 들뜬다. 송년회의 주최자인 국장은 미드에서 파티하는 장면을 보고 파티가 너무 하고 싶어져 요즘 계속 파티를 열고 있다고 했다. 친구네서 홈파티를 하고 지금의 두 번째 파티를 지나 곧 세 번째 파티도 열 예정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바람은 다른 이의 삶까지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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