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흔적들을 찾아서'라는 기획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장소에 대한 누군가의 증언이 필요했다. 충정로에 위치한 아파트의 입구에는 이미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지친 주민들이 '아파트에 출입해 고물을 가져가지 말 것'과 '내부촬영은 금한다'는 경고문을 붙여 놓았다. 나는 그곳을 지나 아파트 내부로 들어갔다.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1층에 위치한 상점에 들러 이 아파트에 대해 가장 잘 이야기해줄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고 메모해둔 것이 있었다. 호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똑똑 대문을 두드렸다. 두 번 정도 더 두드리자 누구냐는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막 머리를 감고 나왔는지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한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문간에 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녀는 지금은 출근을 해야 하니 준비를 하면서 대답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파트에 대해 궁금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고 그녀는 얼굴에 로션을 바르거나 팩트를 두드리며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충정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이 다른 곳보다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점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1층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는 "여긴 옆집에서 꽹과리를 쳐도 들리지 않을 만큼 방음이 잘 돼 있다"라고 말했고, 10살 때 이사와 34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3층의 여자는 "교통이 편리하고 튼튼하게 지어진 것이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중앙난방을 했을 정도로 첨단 시설을 갖추며 지어진 충정아파트의 내부에는 삼각형의 중앙정원이 있다. 그곳의 복도는 끊어지는 곳 없이 모두 연결돼 있었는데, 그 내부 풍경을 보면 "아파트는 급박하고 숨 쉴 틈 없는 인간의 삶을 닮아있는 건축"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어진다. 결국 인간의 삶을 닮은 건축에 더 많은 의미가 새겨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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