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순간들

2022. 12. 27. 20:24 from 작은 사건들

 

 

 

 

# 삶의 증거물

서울공예박물관 개관 1주년을 맞아 12월 20일 '내가 생각하는 한국공예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유홍준 교수의 특별강연이 진행됐다. 유홍준 교수는 공예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말했다. "공예 디자인은 질서와 변용으로 이뤄집니다. 경직돼 있으면 아름다움이 덜 나타나고 변용만 많으면 질서가 없어서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아요. 질서에 변용을 넣으면 공예의 아름다움이 솟아나요. 그것이 공예예술의 본질입니다." 그렇다고 공예가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유 교수는 오히려 공예에서 중요한 건 미(美)보다 용(用)이라고 했다. 쓰임새가 없는 작품은 공예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그릇은 삶을 증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흔히 아는 신석기 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는 2500년 동안 형태가 바뀌지 않고 사용됐는데 그것은 당시 사회에 내외적인 충격이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릇의 모양이 바뀌기 시작한 건 수렵과 채집 사회가 본격적인 농경 사회로 전환되면서다. 삶의 내용이 바뀌자 토기 문양도 비로소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공예는 인간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 내가 굽는 것

올해 늦가을 경남찻사발전국공모전에 사발 세 점을 출품했고 한 점이 입선했다. 12월 24일 입상 작품 전시회에 다녀왔다. 전시회장에는 투박한 듯 섬세한 손길이 닿은 찻사발들이 가지런히 앉아 있다. 그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내 찻사발이 낯설고 대견했다. 작은 컵을 만드는 시간을 지나 찻사발을 만드는 데까지 한 해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은 그동안 만든 컵과 찻사발을 굽는 장작가마의 불을 땔 때 "도자기를 굽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마를 굽는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쩐지 그 말이 자꾸 생각나는 연말이다.  

 

# 한 줄의 말

"좋고 싫음에 대한 판단이 있으면 평안이 없다." 12월 초 연말 공연에서 연주자가 했던 말. 어떤 맥락이었는지 이 한 줄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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